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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긴장을 넘어서는 평화
남북통일을 위한 과제는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주변국은 어떤 역할을 할까?
2030년 미국과 중국 중 어느 나라가 초강대국이 될까?
국가의 안보 시스템 및 매뉴얼 수립 방안은 무엇일까?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장밋빛 한중관계는 사라졌다

사드를 임시 배치한다는 정부 발표와 함께 방송과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고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에 나서고 있다.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자국을 겨누는 사드를 배치하면서 동시에 자국을 비판하는 이러한 경향에 대단히 커다란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이에 따라 기존 조치보다 더욱 강경한 보복 혹은 대응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예측되는 상황이다. 최소한 단기적으로 장밋빛 한중관계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상호 희생과 공헌이 교차한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사 

중국은 한국전쟁에 200만 명이 넘는 '인민지원군'이 참전했고, 그 과정에서 최대 100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도 전사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공헌과 희생 역시 대단히 컸다. 중국 공산당은 국공내전 시기에 상대적으로 막강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에 밀려 줄곧 수세적 상황에 몰리기만 하다가 중국 동북지역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해 대세를 장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동북지역에서 초기 중국공산당 당원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넘어간 '조선인'들이었다.  

사실 만주 지역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중국 공산당의 이름 아래 수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돼갔다. 당시 국제공산주의운동은 1국 1당만을 인정해 사회주의계열 조선인들의 중국 내에서의 독자적인 활동을 금지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조선 독립투쟁가들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그 기치 하에 '중국 혁명'을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 특히 국공내전 시기 국민당에 맞서 중국공산당으로 참전한 동북지역의 조선인은 총 6만2942명에 이르렀다. 그 중 연변지역에서만 총 3만4855명이 참전했다. 이 숫자는 연변지역 참전자 전체의 85%에 달하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남쪽 광둥성 해풍현(海豊縣)부터 내륙의 태항산(太行山) 전투 등등 중국 전역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님 웨일스의 책 <아리랑>의 김산을 비롯해 수많은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중국의 혁명 과정에서 스러져갔다. "조선의 비행사"로 이름을 떨쳤던 안창남도 국민당의 항공부대에서 활동하다가 산시(山西)성의 타이위안(太原)에서 비행사고로 숨졌다. 이렇게 중국 대륙에서 스러져간 '조선인'들은 무려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공산당에 소속된 채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처절하게 산화해갔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신중국(新中國)의 건설'이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을 포함하는" 한국인들의 희생에 힘입은 바 적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반도의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강요받게 된 중국 

중국으로서는 박근혜 보수정부의 사드 배치는 보수정부라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치부해도 '민주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한국 정부에 극도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솔직히 필자도 왜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이렇게 사드 배치를 강행해야 했는지 한 마디로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수평적이고 대칭적인 동맹관계가 아니라 이른바 '비대칭동맹(asymmetric alliance)'이다. 여기에서 비대칭동맹이란 대등한 국력을 가진 국가 간의 동맹이 아니라, 강대국이 안보를 보장하는 대가로 약소국이 자신의 자율성을 희생하는 동맹관계로 설명된다. 어쨌든 중국으로서도 반근착절(盤根錯節), 이번에 한미동맹의 '비대칭적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문제는 북핵을 위시한 한반도의 현 위기 상황에서 중국이 '사드 반대'만의 단선적 정책에 의존해서는 돌파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일찍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평화공존 5항 원칙'의 외교원칙을 천명한 이래 타국에 대한 내정 간섭을 극도로 기피해왔던 중국으로서도 이제 '회피'가 아니라 '적극 접촉'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게 된 시점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대단히 과대평가돼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북한에 대해 중국만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여전히 사실이다.

한반도에서 북핵 위기는 이미 충돌 일보 직전의 국면으로 발전했고, 특히 한국에 사드가 실제 배치되면서 중국은 이미 일종의 '연루(Involvement)'된 국가로서 그 신분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전환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의 '위기'를 내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기회'로  

그렇다면 중국으로서는 이 비상한 '위기'를 활용해 오히려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기회'로 전환시키는 지혜와 전략이 요청된다.  

1978년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양국의 국경분쟁이 존재하는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에 대해 일본의 소노다(園田) 외상에게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 자세히 논의할 때가 아니다. 우선 보류해놓고 나중에 차분히 토론해 상호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천천히 모색하면 된다. 현 세대가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다음 세대가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면 그 다음 세대가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지금 중국에게는 덩샤오핑의 이런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편으로 사드 배치에 대해 일련의 조치로써 적절하게 대응해나가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제3자'의 신분이 아니라 당사자의 신분으로 북한 그리고 미국과 접촉과 협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때로는 압박에 나설 필요성이 있다.

그리해 북한의 핵동결과 완전한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북한과 미국 간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해나가야 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 주한미군 문제 등 핵심 문제까지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동북아시아를 끊임없이 휩쓸고 있는 이 대립과 충돌의 시대의 근본적 종식에 힘을 모아야 한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극심한 상황을 감안해 이 북미 평화협정 체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동시에 공동으로 보증하거나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즉 다자간 안전보장 체제의 구축으로 발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 때리기"는 백해무익, 지양돼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 간에 좋은 관계도 있지만 좋지 않은 상황이 더욱 많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운명처럼 연결돼 있는 한국과 중국 양국 관계에서 먼저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며, 그 토대 위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며 서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이 운용돼야 한다.

역자사지(易地思之)의 관점이 절실하고, 특히 언론이나 학계의 "중국 때리기"는 백해무익으로서 마땅히 지양돼야 할 일이다.

 

상기글은 프레시안에도 기고되었습니다.

원문 보러가기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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