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8년 법제처에 법률의 ‘공포(公布)’ 개념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법제처는 2008년 5월 14일자로 “법률 공포문 전문에 대통령이 공포일을 명기하도록 개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회신을 보냈다.
법제처에 의하여, 2008년 3월 28일「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다. 그 개정이유에 대해서는 “법률 등의 공포 또는 공고문 전문(前文)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자라는 표현의 의미가 불명확하여 이를 공포 또는 공고일로 변경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하고”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정된 이「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은 거꾸로 개정된 것이다. 개정 이전의 해당 조항은 “大統領이 署名한 후 大統領印을 押捺하고 그 일자를 明記하여 國務總理와 각 國務委員이 副署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항을 “大統領이 署名한 후 大統領印을 押捺하고 그 공포일을 明記하여 國務總理와 關係國務委員이 副署한다.”라고 개정한 것이다. 즉, ‘그 일자’를 ‘그 공포일’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fact)에 위배되는 내용이다. 분명히 이 문장의 주어는 대통령이므로 서명과 날인 그리고 공포일의 명기 모두 대통령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어떻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관보 발행일, 즉 공포일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공포일을 미리 명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고 사실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법제처의 어이없는 법률 개정이다.
◈ 잘못 규정된 ‘공포(公布)’ 개념
우리나라의 법률에 최종 서명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희한한 사실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서명만 하고 그 서명일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명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법제처에서 지정해준 관보 발행일, 즉 ‘공포 일자’가 나중에 기록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부동산 계약서만 써도 그 일자를 반드시 써야 하고 만약 그 (계약) 일자가 없다면 계약서 자체가 무효화될 정도로 일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의 최고 규정인 법률에서 서명 일자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매우 커다란 하자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법률 공포권자는 누구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대통령은 법률에 서명만 하고 행정안전부 소속 관보발행국에 넘겨 비로소 ‘공포’가 완성된다. 따라서 현재의 관련 규정으로만 보면 행정안전부 관보발행국 직원이 법률의 공포권자가 되는 셈이다. 국가의 법률이 일개 공무원의 손에 의해 최종 ‘공포’되는 것이다.
◈ 법제처는 결자해지, ‘공포’ 개념을 스스로 수정해야
본래 ‘공포(promulgation)’의 법률적 의미는 바로 대통령의 법률 서명 절차를 가리키며 법률을 성립(확정)시키는 행위이다(예외적으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의회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성립되는 특수한 경우도 존재한다). 따라서 ‘공포’는 관보 발행을 의미하는 publication(출판)과는 분명하게 상이한 개념이다.
이에 대해 권위 있는 <가톨릭 엔사이클로피디아>(Catholic Encyclopedia)는 ‘법률의 공포는 법률의 출판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법률 공포의 목적은 입법자의 의지를 알리는 것인 반면, 법률의 출판은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당사자들에게 제정된 법률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근대화 시기 일본이 서양의 법률 용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promulgation’을 ‘공포(公布)’라는 용어로 잘못 번역해 소개했고, 이 ‘공포’라는 한자어는 본래 ‘널리 알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출판) 행위와 동일시되었다. 그리고 이 용어를 우리나라가 직수입한 것이다.
그간 국가 법률 전반에 걸쳐 권위 있는 ‘유권 해석 활동’을 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권력의 편에 서면서 적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던 법제처는 자신들이 잘못 이해하여 잘못 고친 법률의 ‘공포’ 개념을 결자해지, 바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