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2
2030년에는 누가 대통령 혹은 수상이 되어 있을까?
한국정치에서 정당구조, 세대교체, 선거연령 등 정치문화가 변화하는 가운데 미래에는 누가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 있을까?
내각제로 권력구조의 변화까지 일어나면 어떤 지도자가 수상이 되어 있을까?

어정쩡한 사람

어깨깡패 | 조회 수 179 | 2017.02.28. 14:29

대한민국의 2017년 현재까지 우리의 대통령을 먼저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분절, 여당과 야단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기업과 조합원간의 갈등, 사제지간의 갈등, 부모와의 단절 등 다양한 갈등 및 분절이 다양한 노력에도 현대 한국 사회의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의 문제점을 나열해보면 중간이 없다. 대화와 소통이라는 방법으로 화합을 말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대치구조에 익숙해 있고, 미디어와 국회에서 여김 없이 그러한 모습이 비춰지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이분법적인 시국이다. 그렇다면 2030년의 ‘주인공’이 될 대통령은 어떠한 자질의 사람이어야할까?

 

대한민국의 이분법적인 갈등의 형태는 어떠한 자질을 갖춰야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갈등의 연속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말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주인공’이 가지는 중요한 역할은 ‘In Between'이다. 사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늑대와 함께 춤을 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미국인과 인디언들의 갈등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인디언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미국인으로서 선입견과 편경으로 인해 땅이 빼앗기고 탄압받는 인디언들을 불평등을 부르짖으면서 결국 미국인이지만 인디언의 편에 함께 서서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 탄압하는 미국에 적대에 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이 역할이라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분법적인 대립갈등에서 필요한 존재는 말 그대로 갈등을 해결해 줄 주인공처럼 사이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입견에 휩싸여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견해를 수렴하는 중간자로서 주인공이 필요하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주인공의 중립에서 사이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정쩡’한 배치이고 이상적인 것이고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평등이라는 이상을 바라던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은 부패로서 망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두고 본다면, 민주주의가 경제성논리가 있고 합리적인데 비하여 사회주의는 이상적이지만 이뤄지지 못할 사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편입적인 의견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를 채택하였지만, 민주주의 사상 역시 빈부격차의 갈등과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사례로 유럽권과 북미의 정당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융합적 사상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근간을 두고 있지만, 일반 복지와는 다르게 개별적 차등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라는 융합적 사상이다.

 

자립성, 지식여건, 주거환경, 등의 복합정인 정보로서 개개인에 맞는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전반적인 수준을 평준화를 시키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다같이 평등해서 공평하게 돈과 지식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근간에는 다름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사회 전반적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추진하는 방향이다. 우린 역사를 통하여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서로의 문제를 발견하였고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이 아닌 중간의 역할에서 나아가서 융합을 통하여 양쪽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시대는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보아 ‘어정쩡’이라는 중간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어정쩡’한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에 대해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러한 시도들은 주위에서도 많이 보여지고 있다.

 

그 한 사례로 어정쩡한 직업으로는 건축가이다. 건축이라는 것은 공학적으로 본다면 굉장히 명확하다. 건축의 3요소로 말해보자면 '기능을 가진 구조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안전한 구조를 연구하여 더 높은 구조, 기능적으로 기계식이 도입된 융합적 공간, 현대 디지털 3D 프린팅 기술로 자유로워진 입면으로 아픔다운 외관 끊임없고 진취적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다시 인문학적으로 본다면 고대 건축 괜찮은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빛과 자연을 개개인의 철학이 인 시작인 움집부터 지금 현대 주택까지 우린 '집'이라는 주제로만 수 천년동안 고민을 해왔다. 집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활이 담기는 것이다. 개개인의 생활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각자의 직업과 기능에 맞는 집이라고 담겨지거나 집의 재료 실의 배치, 큰 유리, 작은 유리, 대문, 마당, 옥상. 다락. 등 하나하나 의미가 가득하다. 표현된 구조는 단순하지만 만들어진 공간에서 사람의 생활은 누구보다 복잡하고 끊임없이 다양하다. 건축가는 인문학적인 철학을 근간으로 구조를 다루는 공학적인 일을 하는 예술가이다.

 

즉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건축가는 공학과 인문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양쪽을 바라보는 어정쩡한 직업이다. 공학과 인문학으로 예술성을 추구하는 직업이다. 명확히 전공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융합적이고 거시적인 시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직업이다. 이분법처럼 나눠진 사고의 학문으로는 다소 어려운 작업들이다.2030년의 대통령이 사이 역활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교육의 방식에서부터 이공계, 인문계의 경계를 허무는 교육 분위기가 형성되어야한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사상들의 옳고 그름을 이론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더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는 틀에 박힌 사고에서는 나올 수 없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단 하나의 학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에서는 다소 이분법적이고 분리형 전공 선택으로 학문을 익히고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취직이나 사회는 독창적인 융합형 인재를 원한다. 하지만 이미 학문에 틀을 갖고 익힌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에만 치중한 학업으로 점점 자신의 독창성을 잃어가는 것이다.

 

하루 빨리 예체능과 인문, 공학 간의 융합형 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개성에 맞추는 교육을 배우면서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경계라는 영역을 다차원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추게 된되면, 나라를 이끄는 사업에 있어서 따라가기형 대한민국의 사업이 아닌, 우리의 모습을 갖춰가는 우리 대한민국을 만드는 대통령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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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2017.04.03. 16:26

접근이 재미있네요! 어려운 개념이지만 뜻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