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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영역의 방향성에 대한 제안

까르송 | 조회 수 340 | 2017.02.12. 16:03

문화와 예술 영역의 방향성에 대한 제안

 

(한국의 ‘두드림 음악교육(문화)’의 필요성과 통일한국을 대비한 당위성)

 

<차례>

서론 : 단순한 ‘두드림 음악교육(문화)’이 왜 중요한가?

1.민중의 주체성이 사라진 문화적 현실.

2.민중과 멀어진 마당문화의 무대문화로의 변질.

3.쉽게 접하고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4.문화는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이다.

5.결론

 

서론

 

현대사회는 자유, 민주의 정치적 영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보장이 발전적으로 담보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세계가 놀랄만한 현실적 생활수준이 발전했음은 자타가 공언한다. 해방 후 급격하게 이루어진 외세의 개입은 정치적 자주성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말해주며 그 여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자본가의 생성과정도 지극히 반민족적이며 반사회적으로 급조 되었기에 사회적 합의와 공존의 틀에 기여하기는커녕 계급갈등의 불씨로 여전히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한국인들의 저항에 한민족의 ‘근원적 뿌리 뽑기’정책, 이른바 문화통치의 방법을 선택했다. 지금도 그들의 정책은 한국사회의 문화적 착근의 관성으로 남아있다. 일제의 시기적 지정학적 문화 이전의 다리역할은 시대적으로 정리되지 못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모든 영역에서 허용하기 싫은 점령의 잔재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근원적 대응을 해야 할 당위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잔악한 무리였던 제국주의가 문화통치를 선택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문화의 생명력과 그 관성적 능력은 다른 가치와 차별된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문화의 영역이다. 60~70년대 저녁을 굶어도 가설극장의 울타리를 몰래 기어들어갔던 기억으로 그 힘의 강도를 대변한다.

 

그 중에서 힘들고 곤궁한 민중들이 생활가운데서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민중의 문화인 마당의 문화 특히 4물(꽹과리, 북, 장고, 징)의 대중화 방법과 놀이문화의 생활화가 대안적 문화교육의 확실한 길임을 밝히고자 한다. ‘두드림 음악교육(문화)’은 필수다. 정치권과 기득권은 철저하게 민중을 분리시키는 정책을 써왔다. 체제, 노동, 교육, 심지어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금권만이 실력으로 통하는 시대로 변했다. 90% 갖지 못한 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은 크다.

 

더하여, 기분을 정리하고 다스릴 수 있는 수단이어야할  문화와 예술 영역에도 그 기운은 그대로 전파되어 민중들은 항상 우울하고 불안하며 가족을 비롯한 크고 작은 조직이나 커뮤니티 안에서도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최후의 감성적 정리와 정돈을 해야 할 문화, 예술 분야가 극단적으로 엘리트만을 대상화하였기 때문에 가난하고 바쁜 민중들은 누릴 여유도 누릴 방법도 없게 되었다. 감성의 정화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그 부정적 감정의 에너지는 폭력으로 전환될 것이다.

 

IMF사태 이후 세계 최고의 자살율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고 가족 내의 폭력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 등의 부정적 행태로 나타나는 것은 결국 최후의 감정정화 수단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다. 대중적이며 일부 특별한 계층만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의 틀을 벗어나야 하는데 그 대안으로 한국의 타악기(두드림 악기)교육의 저변을 체계적으로 높이고 생활 속에서 접하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억눌려진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풍선효과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영역에 폭력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1.민중의 주체성이 사라진 문화적 현실

 

대한민국의 민중은 문화의 현장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 세계의 어디를 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른바 “축제문화”는 한국 민중의 현실에서 도외시되고 있다. 각 지방을 둘러봐도 민중의 어울림 문화는 찾기 힘들다. 기껏해야 官과 특정한 커뮤니티의 합작품인 지역축제가 대부분이고 민중은 단순 눈요기나 하는 정도의 수준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기업형 각설이’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주체성이란 당연성이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힘을 토대로 한다.

 

학교 현장에서의 문화교육, 특히 음악교육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교사는 피아노를 두드리고 학생들은 악보를 외워 부르거나 생소하고 생활에 밀착되지 않는 곡을 영혼 없이 불러대고 있는 것이다. 즐기거나 놀이의 연장이 아니라 시험이라는 굴레를 덤으로 얹어 강요되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음악과 놀이문화에 자발적 참여는 불가능하다. 일례로 피아노와 기타로 대변되는 대중적 음악교육의 도구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적어도 기능적으로도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불합리하고 효용성에서도 뒤쳐져서 쉽게 포기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아노와 기타와 시험을 병행한다는 현실성에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자발적 참여와 즐거움이 담보되지 않는 문화교육은 주체성을 상실하게 한다.

 

 

2. 민중과 멀어진 마당문화의 무대문화로의 변질.

 

마당문화의 무대문화로의 변질은 민중을 문화와 멀어지게 했다. 70년대 후반부터 신선하고 엄청난 충격을 민중들에게 던져준 두들김의 전형인 ‘사물놀이’는 인간 내면의 강력한 감성의 발산을 담보해 내면서 대중적 인기 몰이를 했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대표상표가 되었다. 하지만 김덕수로 대변되는 ‘사물놀이패’ 형식의 문화유형은 전문 기능인을 양산하는 경향으로 변질되었으며 기능적 수준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무대문화 형식으로 바뀌면서 마당에서 이루어지던 놀이 문화가 대중과 서서히 괴리되고 마침내 생활 속의 풍물놀이는 사라지는 역사적 사회적 역행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사물놀이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전래된 모든 음악적 요소들은 이미 무대와의 합성을 필요로 하고 있고 엄청난 장치가 요구되는, 민중이 접하기엔 벅찬 영역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참여가격’이 너무 비싸다. 돈벌이 생계 수단이지 문화라고 보기 힘들다. 내 몸에 가까이 있고 내가 그 속에 있을 수 없는 것들은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민중들은 규모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결코 즐길 수 없다. 그냥 잠시 놀라울 뿐이다. 무대 밖에서 관람해야하는 민중은 공감하기 어렵다. 피동적이다. 따라서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마당문화의 생활화가 절실하며 이의 대안은 유아, 초등학교의 쉬운 우리 ‘두드림 음악’을 ‘즐거움’으로 접하게 하고 저절로 인식되게 해야 자생력을 갖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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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쉽게 접하고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장 쉽게 접하고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우리의 가락들이 즐비하다. 한국의 풍물놀이 문화에는 네 가지의 타악기가 버티고 있다. 타악기의 기본 속성은 유기체(가죽+나무)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인간 친화적 파동에서 찾을 수 있다. 북소리는 인간이 갖는 고유의 감성 주파수와 너무나 잘 중첩된다. 타악기의 특성은 다루기 쉽다는 점이다. 그냥 기분풀이 하듯이 두드리면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감정의 정화가 일어난다.

 

한국의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가락에서 3박자 문화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다. 아리랑이 3박자 노래임을 생각할 때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이런 사실을 민중들은 알아야하며 자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한국의 타악기는 쉽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숙련도가 더해지면서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다. 살아갈수록 원숙해지는 인간의 일생과 너무나 닮았다.

 

그러한 면에서 결코 ‘궁중음악’이 만들어낼 수 없는 특별하고 쉬운 음악이 한국의 두드림의 음악 영역이다. 두드림은 궁극의 감정의 배설이며 욕망의 긍정적 표출방식이다. 두들김은 다르게 표출 된다면 폭력의 다른 말이다. 폭력성의 역설적인 문화로의 승화이며 참여형식의 극명함이다. 예를 들면 ‘밀양5북놀이’를 발전시키면 ‘1,000북 놀이’, ‘10,000북 놀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참여는 자부심을 양산한다. 소외는 없다.

 

 

4.문화는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이다.

 

인간이 다른 종족과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갖는 것은 오직 문화의 영역이다. 인간은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인간을 만나는 과정에서 생득적으로 불공평할 수 있는 것들을 메꾸고 보완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서 강화되거나 강제될 수 있는 인식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기회균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사회를 막기 위해서 저절로 생기는 욕망이다. 즉,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지만 스스로의, 강제되지 않은, 온전히 자발적인 놀랍고도 자연스러운 욕망인 것이다.

 

생의 과정에서 수많은 차별과 불공평이 인지되지만 자유와 평등에 대해 역행하는 사회에 대해 기본적이면서 근원적일 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또 다른 천부적 욕망이 ‘억울하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인정욕구를 완성하는 방법을 끝없이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을 통틀어 가장 억울할 수 있는 것이 부모를 잘못 만나는 것이다. 크게는 가족을 잘못 만날 수도 있다. 잘못된 사회적 법률적 구조가 만연한 공동체에서 태어나자마자 그 모든 모순의 환경에 노출되고 피학의 경험을 자신도 모르게 해야 한다면 인간은 결국 그 공동체에 대한 끝없는 원망과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여 온전히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경과에 놓인 사회에 개인이 태어나고 살고 생활하게 되지만 마지막에 인간은 수많은 사회적 압박과 개인적 고통을 덜어내고 삶에 대한 의욕을 새롭게 하고 생의 의욕을 끊임없이 재창조(recreation)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도구를 갖거나 감성적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무가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호모루덴스(Homo-Ludens)라는 독특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문화수요의 욕구’는 차라리 절대적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쉬고 놀지 않는 인간은 반드시 피폐해질 것임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먹고, 자고, 마시고, 놀고, 섹스하고, 수다를 떨면서 노닥거리고, 게임을 즐기고, 스포츠 경기를 즐기면서 인간은 완전히 긴장을 떨쳐버릴 기회를 가짐으로서 다시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삶의 과정과 노동과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메꾸는 모든 것들을 통틀어 우리는 문화라고 한다.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초의 또한 최후의 도구이며 스스로를 특별한 동물계의 종족임을 확인하게 되는 고귀한 자존심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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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2002년의 한-일 월드컵을 기억하는 우리는 2017년 촛불집회에서 모임의 규모와 상관없이 또 다른 희열과 희망과 두려움의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 필자가 밝히고 주장하는 특정 문화 분야의 문제점은 한국이 내재하고 있는 실존적이고 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촛불 시민혁명의 궁극의 목적이 인간다운 삶이 담보되는 대한민국을 새로 설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강건하게 세워나가기를 원한다는 측면에서 “기반욕망”을 만들어내는 ‘즐거운 놀이’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고 체계화 하는 일은 다른 어떤 영역의 개혁과제보다 시급하다.

 

한국적 악기는 무궁한 능력을 만들어내며 민중과 가장 친화적인 도구로 정착되어야 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수의 재원들이 있으며 향 후 북한과의 통일 후에도 유일하게 민족적 교감을 만들어낼 도구임은 분명하다.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을 빠른 시일 안에 극복해 낼 도구로서, 대안물로서의 가치라는 측면에서도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곤궁한 민중들이 생활가운데서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민중의 문화인 마당의 문화 특히 4물(꽹과리, 북, 장고, 징)의 대중화 방법과 놀이문화의 생활화가 대안적 문화교육의 한 가지임을 강조한다. 민중문화는 돈을 내고 무대를 쳐다보는 것에 있지 않다. 무리 속에 뛰어들어 내안의 욕망을 소리 내어 밖으로 힘껏 내지를 수 있어야 한다. 문화가 점령당하면 그 민족은 스스로 침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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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balab 2017.04.06. 16:46

힙합음악이 대세가 되어 음원이며 TV 프로마다 힙합장르로 채워진 요즘 세태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좋은 주장이었다 생각합니다.